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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

동해의 비경을 품은 양양 낙산사

by U.ken 201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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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낙산사는 신라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직접 뵙고 동해의 명산인 오봉산에 671년에 창건한 사찰입니다. 낙산사라는 사찰 이름은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찰로 인정받아 2009년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으며, 홍련암 및 의상대 주변 해안 일대가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2007년 명승 제2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화재와 전쟁 등으로 파괴와 중건을 반복했는데 몽골군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파괴된 것을 그때마다 재건하였습니다. 특히 2005년 4월 5일 양양지방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보물 제 479호였던 낙산사 동종과 원통보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2006년 발굴조사를 통해 원통보전 일대에서 6차에 걸친 증축과 개축이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시대를 복원시기로 잡아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경내에는 칠측석탑, 건칠관음조살좌상, 진신사리를 봉안한 해수관음공중사리탑, 홍예문, 담장, 의상대, 홍련암 등의 문화재를 비롯하여 동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7관음과 1500관음을 모신 보타전, 의상기념관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습니다.


동해바다


낙산사 정문으로 입장하면

홍예문을 지나가게 되지만

저는 후문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정문은 큰 길가에,

후문은 바닷가 절벽에 위치하죠.

입장하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르며

바다를 보니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아침 바다라 그런지 고요하고

수면에 부서지는 햇살이 아름답습니다.


의상대


후문으로 입장하면

맨 먼저 보이는 것이

기념품 가게 입니다.

그냥 지나쳐서 의상대 표지판을 따라가면

이윽고 바다가 보이며

멋들어지게 굽어진 소나무와

정자가 보입니다. 바로 의상대입니다. 



의상대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671년 낙산사를 창건할 때 이곳에서 좌선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입니다. 1925년 당시 주지 만옹스님이 건립하였고 만해스님이 의상대기를 지었습니다. 이후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2009년 9월 해체복원하였습니다. 육각형의 정자로 주변의 해송과 암벽, 동해바다가 어우러진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안정자로 의상대에서 맞는 일출경은 낙산사의 백미라고 일컫습니다.


홍련암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입니다.

동해안의 비경이 품고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의상대


의상대에서 바라본 동해안의 일출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하더군요.

불행히도 이미 해가 한참 떠버린 후에

와서 일출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아침 일찍와서

일출을 꼭 봐야겠습니다.


의상대


절벽 위의 의상대입니다.

동양 수묵화에 나올 법한

멋진 풍경입니다. 굽어진 해송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죠.

가끔 보면 주변 풍경과 뜬금없이

솟구친 구조물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는 하는데

의상대와 같은 정자는

주변 배경에 완벽하게 녹아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범종


홍련암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작은 범종입니다.


홍련암


어떻게 이런 곳에 암자를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절벽 끝에 매달렸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장소에 위치한 홍련암입니다.


홍련암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직접 뵉고 세운 암자로, 홍련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전각은 2002년에 중건한 것으로 관음굴이 있는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졌습니다. 불전 내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습니다.


동해바다


홍련암에서 바라본 의상대와

동해의 비경입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와~"라는 탄성과 함께

열린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관음지


사진에 보이는 연못은 '관음지'이고,

긔 위에는 '보타락'이라는 전각입니다.


동해의 비경을 실컷 구경하고

사찰쪽으로 향했습니다.


보타전


보타락 아래 통로를 지나오면

보타전이 나타납니다.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낙산사의 랜드마크라고 해야할까요,

해수관음상을 보러 가기 바로 전

만날 수 있는 '해수관음공중사리탑'

입니다.

만약 홍예문을 통해서 관람을 한다면

해수관음상을 보고 난 이후에

이 사리탑을 보게됩니다.


1692년 비구 석겸이 큰 뜻을 세우고

조성한 사리탑입니다.

비문에 따르면 1683년 홍련암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사리가 탁상 위로 떨어져

이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6년 이 사리탑을

해체하여 보수하는 과정에서

진신 사리와 장엄구를 발견했답니다.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입니다. 이곳 낙산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또한

가장 높은 구조물이죠.

1977년 당시 동양 최대 규모로

만들어졌습니다. 동해의 거센

파도를 다스리는 듯한 모습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구조물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까 언급했듯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기 보다는

뜬금없이 툭 튀기 때문입니다.


삼족섬


관음상 아래에 보면 두꺼비 한마리가

숨어있습니다. '삼족섬'이라는 신인데

해수관세음보살께 예불을 올리고

관음상 아래의 삼족섬을 만지면

재물복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저도 한번 슥 만지고 갔습니다.


꿈이이루어지는길


'꿈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해수관음상 구역에서 원통보전으로

이르는 길인데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예쁩니다.




원통보전으로 통하는 대문입니다.


원통보전


뒤에 보이는 사찰이 원통보전이며

앞에 보이는 탑은 칠층석탑입니다.

원통보전

낙산사의 본전입니다. 원통보전이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일컫죠. 낙산사는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세워진 절이기 때문에 이 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나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같은 불전이 없고 이 원통보전이 금당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칠측석탑은 몇 안되는 조선시대 석탑입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폐불정책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명찰들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고 새 절이 별로 창건되지 않아 불교미술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조선시대의 특징이라는 것이 따로 있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낙산사는 조선초 세조 때 중수되면서 범종, 불상, 탑 모두 고려시대의 전통을 잇는 조선적인 세련미를 보여줍니다. 이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나라의 보물로 지정된 것이죠.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별무늬담장

원통보전 별무늬 담장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조선시대의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음은 유홍준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유홍준교수님은 이 별무늬 담장의 멋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 별무늬 담장은 암키와와 진흙을 교대로 쌓으면서 사이사이에 화강암을 동그랗게 다듬어 끼워넣음으로써 아름다운 별무늬로 장식된 이 담장은 어떤 꽃담장보다도 조선인들의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정취를 잘 보여준다. 그처럼 단출하면서 멋 부린 태가 없는 고고한 멋을 연출해낸 것은 가장 조선다운 디자인적 발상이라 할 만하다.


칠층석탑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한

칠층석탑



동종


2005년 4월 산불로 용해되어

소실했던 동종인데 2006년 10월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그당시 산불이 얼마나 크게 났으면

저런 금속 덩어리가 녹아내렸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사천왕문


위 사진은 사천왕문으로

사천왕을 모신 문입니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죠.

특이하게도 6.25 전쟁과

2005년 양양 산불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천왕사천왕


왼쪽부터 광목천왕, 다문천왕, 지국천왕, 증장천왕입니다.


홍예문


성문처럼 세운 문으로

낙산사의 입구입니다.

후문부터 보면서 와서

마지막에 정문에 이른 것이죠.

홍예문

낙산사 안내문을 보면 이 무지개 모양 돌문은 세조 13년에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절 입구에 세운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설명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확한 설명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동해 낙산사의 영광과 상처' 쳅터에 잘 나와 있는데 정확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세조는 세조 12년 3월부터 윤3월까지 40일간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세조의 금강산 행차에는 왕비, 왕세자와 신숙주 등 많은 신하들이 수행하였고 원래 목적은 고질병인 피부병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외금강 온정리에서 온천을 마친 세조는 귀로로 동해안변을 타고 내려와 낙산사, 대관령, 월정사를 거쳐 궁궐로 돌아갔다. 이때 세조는 몽골난 이후 퇴락한 낙산사를 보고 학열 스님에게 중수를 명하였다. <독국여지승람>은 이 사실을 "세조가 이 절에 행차했다가 전사가 비좁고 더러우니 신축하도록 명하여 굉장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까지 강원도 양양 가볼만한곳 1순위로 꼽히는 낙산사에 대한 정보 및 관람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낙산사 입장료 안내


낙산사 입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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