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갑문교를 건너자마자 만났던
미국인 라이더가 길을 물어봐서
평소 갈고 닦았던 유창하고 싶지만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성심껏 대답해 주었더니
사진도 찍어달라고 해서 한 컷 찍어주고
덩달아 나도 한 컷 찍었다.
제주도 종주는 길 오른편으로 가야
바다가 더 잘 보이고 맛이 있지만
그 미국인은 반대 방향으로 라이딩 중이라서
오른편으로 주행하기를 highly recommend 해줬지.
아침부터 세찬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어.
게다가 역풍이었지.
산 넘어 산으로 기온도 낮은데
구름이 잔뜩 껴서 해가 들지도 않았어.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매직을 경험했어.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찬바람 때문에 따뜻한 차 한 잔이 너무 마시고 싶었지.
하지만 아침에 문을 연 카페가 없더군.
그러다가 이 카페를 만났어.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였지.
카페공작소.
제주도의 느리고 한가한 마을에 은둔한
어느 화가가 상주할 것만 같은 이쁜 카페였지.
우연히 들른 세화항구의 어느 카페
카페 안 구석탱이에 '이 구도로 사진을 찍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조그만 액자 모습의 유리창이 있었어.
사진이 이렇게 엽서같이 이쁘게 나올 줄은 몰랐어.
달달하고 따뜻한 제주 귤 차를 마시며 빵으로 요기를 했어.
.
.
사진이 없어. 역풍을 헤쳐나가느라 겨를이 없었거든.
제주도의 바람은 상상 이상이야.
풍력 발전소가 몇십 개가 있는 지역을 지나는데
평소 온순한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져나와 당황스러웠어.
직접 해보면 겨울 초입에 부는 시베리안 북서 계절풍과
정면으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알게 될 거야.
삼양 검은 모래 해변.
제주 시내 입성 전 마지막 해변이야.
이거 찍을 정신은 있었나 봐.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 사진 하나 남기고 싶게 했을 거야.
아침 8시 출발해서 오후 2시경에 도착해서 첫 끼를 먹을 수 있었지.
비행기 시간이 오후 4시여서 그야 말로 타임어택이었어.
마구마구 달려왔지.
230km의 장정이 끝나는구나. 가슴 뭉클한 성취감이 있어. 이 맛이야 이 맛!
언제나 그렇듯이 라이딩 후에 먹는 밥이 최고의 맛이지. 꿀맛이야.
우진해장국 이 집이 제주 맛집으로 소문나 있더라고. 가격표 참고하라고.
물론 의도치 않았겠지만
자전거 타며 춥지 않았냐고 물으며
놀라는 표정에 난 통쾌했어.
몰골은 꾀죄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난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고,
날씨는 춥지만 벅찬 가슴은 뜨거웠어.
푸른바이크 쉐어링(자전거대여점)은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안에 있어.
제주도의 모든 것이 소중해지고 있어.
홍보하는게 아니라 그냥 소중한 것을 남기고 싶은 것 뿐야. 내 공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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