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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체코

프라하 카를교

by U.ken 2018.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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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카를교

카를교 건축의 역사

프라하 여행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카를교를 꼽겠다. 사람들은 블타바강에 놓인 카를교를 현존하는 석교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는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135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4세의 통치 아래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를 파를레르시가 건설을 시작해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했다. 길이 621m, 너비 약 10m로 중세의 걸작물이다. 16개의 아치가 떠받치고 있으며, 건설 당시 다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흙에 달걀노른자를 회반죽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841년까지 460여 년간 블타바강을 건너 구시가지광장과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이 때문에 프라하성과 구시가지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게다가 그 당시 체코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카를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에는 이 다리를 단순히 돌다리라고 했지만 1870년부터 카를교로 불렸다. 1960년대 트램과 버스가 다녔는데 진동 때문에 다리 기반이 손상되어 붕괴 위기를 맞게 되고, 1965년부터 1978년까지 대대적인 보수 공사 이후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되었다. 파손되지 않고 중세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프라하 카를교 전경카를교 전경

구시가 교탑

페트르 팔러에 의해 1380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탑 중간에 카를 4세, 성 비투스, 바츨라프 4세의 상이 있다. 탑 자체보다는 전망대에 오르면 볼 수 있는 블타바강 맞은편의 말라스트라나와 프라하성 주변의 중세풍의 아름다운 전경이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다. 다만 나는 탑에 입장할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입장료 때문에 구시가 교탑에 오르지 않고 패스했다.

구시가 교탑구시가 교탑

다리의 양 끝의 탑은 게이트로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받을 목적으로 세운 것이지만 지금은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다만 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카를교 위의 성인상

1683년부터 1938년간 다리 양쪽에 30개의 성인상을 제작해 중세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카를교 동상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성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이다.

성 얀 네포무츠키 동상성 얀 네포무츠키 동상

성 얀 네포무츠키 동상에 대해

1393년 당시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왕비는 왕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어느 장군과 사랑에 빠졌다. 이후 왕비는 바츨라프 4세 때 궁중 주교인 얀 네포무츠키에게 고행성사를 하며 하늘에 죄를 빌었다. 왕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불러 아내의 부정을 물었으나 신부는 대답하기를 거절한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신부의 혀를 뽑아버리는 고문을 자행하고 강에 던져버렸다. 네포무츠키는 죽는 순간 이 다리 위에 선 모든 사람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성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앞에서 동판을 만지며 소원을 빌게 되었다.

예수 수난 십자가상예수 수난 십자가상

예수 수난 십자가상

거리의 악단이 각자 자신들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동상은 예수 수난 십자가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수상에 히브리어가 적혀있는 조각상이다. 'holy, holy, holy, the lord of host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거룩하신 민중의 주'라는 뜻으로 유대인의 기도문인 구약성서의 구절이다.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모욕적인 석상이다. 당시 신성 모독죄로 처형된 유대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카를교 위의 예술가들

다리 위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악단 뒤로 프라하성이 보인다.카를교 거리의 악단카를교 거리의 악사들


카를교 예술가카를교 위 화가

거리의 화가가 즉석에서 캐리커쳐를 그려준다.

프라하 카를교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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