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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국가부도의 날 리뷰

by U.ken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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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를 썼다. 평일 점심시간인 12시 영화 티켓을 끊고 상영관에 앉았다. 영화관 내에 사람이 대략 일고 여덟인 것 같았다. F열 9번 좌석 정중앙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니 좌우 대칭이 딱 맞다. 내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치 영화관 하나를 통째로 대관한 기분이다.

요즘 핫한 영화가 많다. 보헤미안 랩소디, 마약왕, 국가부도의 날 이 셋 중에 무엇을 볼지 고민하다가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했다.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기에 어쩌면 음량이 풍성해야 그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나, 아니면 액션씬이 많은 마약왕을 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국가부도의 날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IMF 시절 온 국민이 힘들었던 시기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그나마 국가 위기에서 벗어나 있던 울산의 현대중공업 제조업 기반 경제 구역 내에 살아서 IMF의 혹독한 바람에서 비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IMF 사태가 뉴스에서 언급되고는 했던 그런 용어로 기억 속 어딘가에 어렴풋할 뿐이다. 내가 겪지 못했지만, 분명히 벌어졌던 일이고 수많은 사람이 힘들어했던 그 IMF 구제금융 사태는 분명 존재했다. 그 이후 사회가 급변했으며 지금의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기에 그 당시 IMF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싶었다.

국가부도의 날은 3가지 파트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 둘째는 국가 부도 사태를 감지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부류. 셋째는 그 당시 고통받았던 대부분의 서민을 대변하는 중소기업 사장. 이 세가지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을 통해 국가 부도가 나던 그 당시의 상황을 표현했다.

국가부도의날


먼저 경제 관료 쪽을 바라보면, 국가부도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과 조우진이 연기한 박대영 재정국 차관의 갈등을 통해 상반된 시선을 보여준다. 한시현이 고통을 받는 국민을 대변하여 이 사태를 최대한 국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자신이 가진 힘보다 더 큰 권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반면 재정국 차관은 경제 파탄으로 어려워질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대기업과 본인, 그리고 정권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이 인물은 실존 인물인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을 표현했다. 박대영의 의도대로 IMF의 돈을 빌렸고, 그 대가로 금리를 올려 수많은 기업을 줄도산하게 만들고, 외국 자본이 도산한 기업들을 저가로 손쉽게 인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노동 유연화라는 명분으로 해고를 쉽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자살률이 42% 증가했다. 이 파트에서는 IMF 사태의 원인이 국민들의 과소비가 아닌 방만한 기업경영과 고위공직자들의 무능과 탐욕이었음을 보여주려 한다. 이를 한시현과 조우진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더 극적으로 표현했다.

유아인이 연기한 금융맨 윤정학은 국가부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배팅에 나선다. 영화 속에서 '난 안 속아'라는 말을 내뱉으며 '한국에 경제위기는 없다, IMF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라는 국가의 경제 성명을 믿지 않는다. 환율 800원대에 달러를 미리 사 놓고, 급매로 나온 부동산을 매집한다. 결국 한국은 그의 예상대로 IMF 구제 금융 신청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때 윤정학은 크게 돈을 번다. 투자의 기본 원칙대로 달러와 부동산을 저가로 사서 고가에 팔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IMF 사태 때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욕망에 충실했고 시대를 제대로 꿰뚫어 봤으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허준호가 연기한 그릇 공장 사장을 통해 그 당시 대부분의 고통 받던 평범한 가장과 직장인과 중소사업채 사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이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영문도 모른 채 경제위기 파도에 휩쓸려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비참한 삶을 보낸다. 버티고 버텨 살아남지만 결국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고집쟁이 사장이 돼버리고 만다. 불신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졌음을 보여줬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1997년 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을 때의 상황을 드라이하게 보여준다. 가치 개입의 의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공하는 개인의 모습도, 자신에게 잘 해주었던 거래처 사장에게 깡통 어음을 보내는 모습과 그렇게 배신을 하게 된 극한의 상황도, 그로 인해 소주를 마시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건조하게 비춰줬다. 시류에 휩쓸려서 벌인 일들. 똑같은 현상 아래 누군가는 기회를 봤고, 누군가는 인생의 쓴맛을 봤다. 배짱 좋게 믿던 바를 끝까지 밀어붙여 자본주의의 승리자가 되었고, 혹은 믿던 사람을 배신해야 했던 나약한 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한편, 진부한 신파극으로 치닫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약간 쥐어짜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너무 재밌게 영화를 봤지만, 한편으로는 IMF 위기 발발의 원인을 정부의 무능으로만 치부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물론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상 국가 위기 사태가 발발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 영화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IMF 사태가 발발하게 된 '원인'은 기업의 방만한 경영, 은행의 묻지마 대출, 정부의 무능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완전히 바뀌었고, 이로인해 사회에 나타난 '양상'은 두 가지다. 첫째, 중소기업과 대기업 가리지 않고 도산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스러워했다. 둘째, 소수의 기회주의자들은 크게 성공했다. '결과'로 이때 성공한 자들은 슈퍼 부자가 되고, 많은 노동자는 정리해고가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이 격차는 점점 벌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현재까지 더 심해지고 있다.

IMF라는 어려운 주제를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꽤 현실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루면서 그 당시 사람들의 다각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 영화인 것 같다. 이제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사건을 담았는데 그때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액션이나 스릴러, 또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아닌 어쩌면 한없이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더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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