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후

자의식 해체_역행자

by ken! 2022. 9. 4.

오랜만에 글을 쓴다. 참 오랜만이다.

혼자 사무실에 나와 음악을 들으며 역행자라는 책을 읽다가

내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걸어온 인생 순간 순간 여러차례의 기회가 있었고, 기회인줄도 모르고 수차례 걷어찼던 것 같다. 그 후회의 순간에 대해 만약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며 공상에 나래를 펼친다.

자의식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것 같다. 인정하고 나면 편해질 것을.. 편해지면 차분하게 개선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거다. 

지금의 나의 정체성은 뭘까. 월급날이 두려운 찌질한 사장이다. 집주인의 보증금 올려달라는 요구에 쩔쩔 매는 찌질한 남편이자 애들 장난감 앞에서 열심히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찌질한 아버지다.

무엇하나 이룬게 없는 찌질한 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사업이 잘 굴러가고 있는 척, 집주인 앞에서 당당한 척, 아내 앞에서 씩씩한 척, 아이들과 놀아주며 자상하고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인 척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나와 가족, 그리고 사업체를 지킬 수 없다. 바뀌어야 한다.

난 항상 뒷심이 부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고, 신체 능력이 평균 이상이었던 나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친구들이 선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였다. 그리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공부는 반 5등안에 항상 들었고,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아 체육시간에도 항상 칭찬 받았고, 반 대항전 축구나 농구대회가 있으면 언제나 선수로 선발됐다. 그냥 적당히 공부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독이 돼서 그리 열심히 또는 독하게 마음먹고 뭔가를 해본 기억이 없다. 집안 분위기도 자유로워서 공부 1등, 또는 명문대를 가야한다는 등 이런 압박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잘못됐다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행운이었다. 행복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한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만 적당히만 하면 기대이상의 결과를 얻으니 그 안에서 나의 물렁한 성격이 형성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다. 무언가를 절실히 이루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적당히 물러났다. 어렸을 때 농구 시합을 해도 마지막 순간에 골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절실함 또는 독기가 부족했다. 20대 중반 토익시험을 볼때도 첫 시험 450점 이후 매달 100점씩 점수를 향상시켰지만 860점에서 만족하고 토익공부를 그만 뒀다. 한번 시작했으면 토익 만점을 목표로 삼고 끝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덤볐으면 더 큰 성취를 이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20대 후반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영업이라는 분야에 끝을 보겠다고 덤볐다면 더 큰 배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회사에서 1년도 안다니고 바꾼게 수차례다. 나의 경력은 단절의 연속이었고 쌓이는 것은 없었다. 결혼은 성급했다. 이룬것도 없이 어떨결에 한 결혼. 부모님의 우산 아래서 결혼까지 해버린 철부지 찌질이였다. 그나마 잘 한게 있다면 마지막 직장에서 목표로 한 3년을 채웠고, 꿈이었던 내 사업채를 차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운좋게 사업이 잘 풀려 지금 2명의 직원과 2명의 알바를 둔 사장이지만 여전히 사업의 비전은 불투명하고, 수익은 점점 떨어지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날이 두렵다. 이 또한 나의 뒷심과 절실함과 꾸준함이 부족한 탓이다. 어느정도 사업이 된다고 생각하자 철인이라는 취미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취미생활을 즐길 때가 아니다. 보다 더 절실하고 끈질기게 부딪혀 이 분야의 최고를 찍고 난 다음에 취미생활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찌질한 사장, 남편,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청이 말하길 자의식 해체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오늘 찌질한 사장이자 남편이고 아버지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