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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

행주산성_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by U.ken 201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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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며칠 전 맛집 포스팅했던 행주국수를 먹었던 날
국수를 먹기 바로 직전에 다녀온 곳이 바로
행주산성이다.


그때 소개했듯이 잠시 짬을 내서
임진왜란 3대 대첩지 중 하나인 행주산성을 방문했다.


행주산성 안내


행주산성_사적 제56호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룬 역사적 현장이다. 권율 장군의 불퇴전의 지휘로
2,300명의 정예병과 승병, 의병, 부녀자 등 3,000여 명이 3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부녀자들까지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움으로서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유명해졌다.
산성의 형태는 산을 둘러쌓은 퇴뫼식 토성이며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삼국시대의 백제 때 처음 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2017년 3월에 산 정상부 주변 경사면에서 석성이 발견되어 학술연구 중이다.
주요시설물은 충장공의 사당인 충장사와 행주대첩비,
대첩기념관, 충의정, 충훈정 등이 있다.
행주산성은 한강을 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적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고양시의 대표 명소로
가볼만한 곳 중 단연 1순위다.

행주산성 안내도


루트

먼저 루트를 대략적으로 짚으면 아래와 같다.

대첩문 - 권율장군동상 - 행주대첩비 - 충의정
 - 토성 - 진강정 - 대첩기념관 - 충장사

위 사진을 보면 행주산성안내도인데
대첩문이 산성의 정문이다. 중앙 정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것이 권율장군동상이다.
그곳을 보고 왼쪽에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약간의 경사가 있으나 정상까지
그리 높지 않다. 딱 산책하기 좋다. 나는 중간에
옆으로 빠지지 않고 곧장 정상의 행주대첩비까지
올랐다. 대첩비 뒤로 충의정 영상교육관을 찍고,
토성길이 어떤지만 보고 되돌아와서 진강정을 갔다.
내려오면서 대첩기념관, 충장사를 보고 답사를 마쳤다.


요금 안내

구분 

나이 

개인 

단체 30인 이상 

성인 

20~64세 

1,000원 

700원 

중 · 고등학생 / 군인

13~19세 

500원 

350원 

초등학생 

7~12세 

300원 

210원 

무료관람 

  • 6세 이하
  • 65세 이상
  • 국가유공자
  • 장애인
  • 병역이행 명문자(3대 현역복무) 


운영 시간


매표시간
동절기 09:00~16:00
하절기 09:00~17:00


관람시간

동절기 09:00~17:00

하절기 09:00~18:00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야간개장 : 매년 7~9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10시, 오후 9시까지 입장)


주차요금

승용차 : 2,000원 / 버스 6,000원(종일 주차)


권율장군동상

권율장군동상

대첩문을 지나오면 바로 보이는 동상이 바로
권율장군동상이다.
1986년 세웠으며, 높이는 5m,
좌대 높이는 3.35m로 근대조각가 김세중의 작품이다.
동상 뒤편으로 4폭의 부조물이 있는데
행주대첩 당시 관군, 승병, 의병, 여성들의
치열한 항전을 그리고 있다.

권율장군이 가장 높은 지휘소에서 왜군의 정세를

살피던 중 왜군이 목책에 접근하였을 때 큰 북을

세 번 치자 우리 군은 활을 쏙, 차포는 일제히 불

을 뿜었다. 왜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죽음

을 무릅쓰고 교대로 산성으로 올라와 조총을 쏘

며 목책을 넘으려 했다. 이에 권율 장군은 큰 칼

을 뽑고 진두지휘하니 전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

졌다.

승군은 승려의 몸으로 전투에 참가한 군대였다.

승군장 처영이 이끄는 승군은 산성의 서북쪽에

있는 자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왜군이 계곡

으로 올라와 조총을 쏘며 목책에 불을 질러 

때 목책의 진지가 위태로웠다.

이때 권율 장군이 진두지휘하고 승군장 처영이

독전하자 승군은 육박전으로 왜적을 쳐서 끝내

그들을 격퇴시켰다.

의병은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자원한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대였다.

행주산성의 의병은 전라도 순찰사 권율장군을 

따라온 전라도 의병이 많았다. 의병은 관군에 비

해 무장이 허술하고 훈련이 부족하였지만 사기는

훨씬 높아 칼, 도끼 등을 들고 관군과 함께 공방

전을 펼쳤다.

적이 목책에 불을 놓으면 물로 불을 끄고 화살이

다하면 돌로 적을 쳤다. 

우리 군은 산성 위에서 화포와 강궁을 쏘고 큰 

돌을 굴리면서 올라오는 적을 막았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포탄과 화살이 다하고

돌마저 떨어지게 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치마

로 돌을 날라주어 돌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

부녀자들의 호국의지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여 그 후부터 '행주치마'라는 말이 더욱 유명해

졌다. 


오솔길

오솔길 산책로

나즈막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기분이 상쾌하다.


행주대교

행주대교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확 트인 전망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미세먼지였다. 

덕양정

1970년 건립한 정자로 한강과 인근의
서울과 김포시, 고양시 등의 경치를
관망할 수 있다.


덕양정


마침 사진을 찍는데 커플이 앉아있다.

예쁜 실루엣이 생겨 마음에 든다.


자유로


화통하게 뚫려있는 자유로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 자유로를 타고

판문점으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갔었지.

한강 변으로 오솔길이 구불구불하고,

왼편으로는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띈다.

저 멀리로는 남산과 월드컵공원, 마곡철교,

가양대교를 건너 성산대교까지 보인다.

시야가 좋으면 63빌딩과 관악산까지

보일 텐데 미세먼지가 아쉽다.


신행주대첩비

신 행주대첩비

정상에는 두 개의 행주대첩비가 있다.
신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 안에 있는
초건비가 바로 그 둘이다.
먼저 신 행주대첩비는 15.2m 높이의 석탑이며,
1970년 행주산성 정화사업으로 건립한 것으로
앞면의 한문 글귀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이다.


행주대첩비


대첩비각

행주대첩비(초건비)

대첩비각 안에 있는 초건비는
경기도 문화재 제74호로
1602년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며
행주대첩의 승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의 문장과
명필 한석봉의 글씨였으나
현재는 마모되어 식별이 어렵다.
비문은 1593년 행주대첩의 경과와
충장공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비의 재질은 흑색이 가미된 화강암이다.
풍화작용과 마모로 식별이 어렵게 되어
헌종 11년, 1845년에 같은 내용의 비(중건비)를
기공사에 세워 놓았다.



비석 면에 마모되어 식별이 어려운 글씨.

하지만 고맙게도 비석 옆으로

행주대첩비문 해설 안내판이 있다.

그 안내판을 보면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충의정

충의정

1977년 건립한 영상교육관으로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승리에 대한
영상물을 상시 무료 상영한다.
상영시간은 17분이 소요된다.

행주산성 토성

행주산성 토성

덕양산(125m)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1km이며, 현재는 415m 정도가 복원되었다.
산성의 남쪽은 한강에 맞닿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며,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연적인 요새지로서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이중구조이다.
이 산성은 행주대첩(1593년)의 역사적 전승지이며,
임진왜란 3대첩지로 꼽힌다.
삼국시대 기와 및 토기 파편들이 발견되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새였음이 드러났다.

대첩기념관

대첩기념관

유물전시관으로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로 추정되는 곳에
1980년 건립하였다.
전시물은 화차, 신기전(기), 총통(기) 등
무기류와 대첩기록화, 대첩비문 탁본,
기타 산성에서 발견된 유물 등이 있다.
기관총을 떠올리게 만드는 화차도 볼 수 있어
많이 신기했지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쉽다.


삼도삼문

삼도삼문과 충장사

궁궐, 사당, 서원, 향교에서 볼 수 있는 삼도는
가운데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를 두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는 곳으로
일반인은 오갈 수 없으며,
부득이 넘어가게 될 경우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넘어가야 한다.
삼도와 삼문이 있을 때 들어가는 방법은
우입좌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온다.
충장사에도 역시 삼도삼문이 있었다.

충장사


충장공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사당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렸다.
매년 3월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행사가 열린다. 


권율장군


향을 3개 집어서 제단 위에 있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았다.

향을 피워올리고 향로에 꽂은 후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드렸다.

당신의 용맹과 지혜, 그리고 충정으로

이 후손이 이 땅에 발을 딛고

행복하게 살고 있노라고

마음속으로 감사인사를 가만히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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