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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오 한강 김세영 허영만

by U.ken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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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쓴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추천해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니 다행히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책이었고, 하루라는 시간이 순삭되었다. 일요일 오후와 맞바꾼 책이다. 

허영만의 극화로 해방 이전과 제6공화국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다룬다. 총 5권으로 1987년 월간 만화광장에 연재되었다가 2019년 5월 재발간 되었다. 타짜의 스토리 작가인 김세영이 여기서도 스토리를 맡았다. 원래 안기부에서 대학생용 반공만화로 청탁했는데, 허영만이 '내용에 간섭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하고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1부 붉은 허수아비 부분은 반공물의 색채가 짙다. 그럼에도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인공기 장면 때문에 안기부에서 몇번 뭐라고 한 적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북으로 넘어간 주인공 이강토의 눈과 입을 통해 공산주의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지고, 남한의 시위 현장과 고문 장면 등의 민주화와 독재의 과정이 아무런 여과없이 그려진다. 그래서 <오! 한강>은 '반공 만화'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고, 오히려 평등과 혁명, 반외세 자주화 등의 이데올로기를 그려낸 근현대사의 교과서라는 평을 받는다.

이 작품은 사상갈등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이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와 상황이 존재할 뿐. 우리네 인생이라는게 주어진 상황에 연기를 하는 한바탕의 연극이 아닐까. 시대의 격랑 속에 저항하는 자, 산화하는 자, 타협하는 자, 적응하는 자, 회의주의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덤덤히 그려낼 뿐이다.

해방 직후부터 87년 6.29까지 약 50년간을 그린다. 전반부의 주인공은 전라도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로 성장하는 이강토이다. 그는 북한에 가서는 요직에 오르고, 남한에 돌아와도 화가로 성공했다. 후반부의 주인공은 이강토의 막내아들 이석주이다. 그는 역시 화가의 길을 걸으며 민주화 투쟁에 투신한다.

이 작품에는 해방 이후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의 파란만장했던 한국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다. 미군정시대, 한국전쟁 발발, 조봉암을 죽인 진보당 사건, 4.19와 5.16 군사쿠데타, 박정희 유신독재, 광주민주화항쟁, 5공화국, 인천사태, 건대항쟁, 6.10항쟁, 6.29선언 등의 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의아한 것은 이 작품이 당시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기획한 반공 만화였던 것이다.
당시 유명세를 탔던 허영만 작가에게 정보기관이 전화를 걸어 반공 만화를 부탁했다. 하지만 허 작가는 몇 번을 거절했다. 그러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야심한 계획을 잡고 조건부로 작품 제안을 승낙했다. 그 조건은 끝날 때까지 아무런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 당시에는 문화공보부가 모든 오락 산업에 검열을 걸어 정권 입맛에 맞는 작품만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오! 한강>은 발표 당시부터 독자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주었다. 6공 정부가 들어서며 월북 작품이 비로소 해금되던 시기에 대중문화에서 단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정면에서, 그것도 공산주의자인 이강토의 시각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역사에서 아들의 역사로 80년대 격동의 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허 작가는 작품을 쓰는 동안 줄곧 경찰의 회유와 협박, 검열 압박 등을 계속해서 받았다고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백했다. 한 번은 작품에서 인공기가 등장해 난리가 났고, 또 한 번은 전라도 사투리를 표준말로 처리해 혼쭐이 난적도 있었다고 그는 토로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작품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1988년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유행하는 등 역설적이게도 독재 타도 민주화 쟁취 등에 대한 갈망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매개물이 되었던 것. 지금의 386세대들은 당시 <오! 한강>의 명대사를 하나씩은 외우고 다녀야 대학생 티가 난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품에서 나오는 기회주의자 덕배, 지주와 하인의 간통을 목격하고 집단 린치를 당한 후 자살한 삼득, 술집 작부가 된 야스코, 회의주의자 김희중, 나약한 지식인인 김혜린과 한동수, 그리고 이들과의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주인공 이강토는 혁명을 꿈꾸는 예술가로 승화된다. 마치 허 작가의 전 작품인 <각시탈> 속의 민족 영웅인 강토를 지향하듯 말이다. 

허영만

한국 만화의 전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한국의 대표 만화가 등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하고 있는 허영만 화백은 한국 만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울러 우뚝 서 있다.
1947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하였고, 1974년 소년한국도서 제2회 신인만화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그는 <총소리>, <각시탈> 시리즈를 필두로 <날아라 슈퍼보드>, <아스팔트사나이>, <비트>, <타짜>, <식객> 등 다수의 만화 작품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영상분야에서도 원작 뱅크이자 흥행 보증수표 등으로 불린다.
만화가 원로로 불릴 나이가 된 그이지만 지금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기발한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허영만 화백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한국 만화의 자존심'이 되고 있다. 

김세영

80년대 후반부터 작가 허영만의 ‘동반자’로 숱한 화제작을 만들어내었다. 그와 허영만이 함께한 <고독한 기타맨>, <카멜레온의 시>, <미스터 Q>, <사랑해>, <타짜> 등은 한국 최고의 흥행콤비가 만들어낸 히트작으로 꼽힌다. 특히, 1988년 당시만 해도 금기였던 이념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오! 한강> 만화스토리를 집필, 화제가 되었다. 당대 한국의 인기 만화를 ‘조련’하는 연금술사로 통하는 것도 이런 역량에서 기인한다. 시인이 되고자 숱한 문학습작을 하며 쌓은 소양, 그것이 잇단 화제작을 발표하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우리 만화계의 ‘프로 이야기꾼’으로, 단연 으뜸의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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