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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한양도성 숭례문(남대문) 답사

by U.ken 201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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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조선왕조를 세운 지 3년 만인 1394년(태조 3년)에 한양이 새 도읍으로 정해지고 여기에 새 도성이 건설되었다. 도성 건설계획에 따라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고 곧이어 경복궁을 건립했으며, 수도 전체를 방어할 목적으로 도성 둘레 네 산에 성곽을 쌓았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두어 도성 내외로 출입하기 편리하게 했고, 정문인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이름 지었다.
숭례문은 개성 남대문, 평양 보통문과 함께 우리나라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성문이다. 1396년 태조 5년에 시작하여 1398년 태조 7년에 완성했는데 1448년(세종 30년), 1479년(성종 10년), 1868년(고종 5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수리를 통해 잘 보존되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2월 10일의 방화로 문루 2층이 불에 타 무너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정밀 피해조사 2년, 복구공사 3년 등 모두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원형에 가깝게 복구되었다.



남대문시장에 액션캠을 사러 갔다. 저번에 탐론 렌즈를 사고 단골이 되기로 결심한 바로 그 가게로 갔다. 별 고민 없이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니콘의 키미션170을 구매한 후 바로 시험 삼아 찍어보고 싶어서 시장 옆 숭례문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남대문 교차로를 수도 없이 지나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숭례문을 일부러 보러 간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조선 수도 한양의 정문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국보 1호이다.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닐까. 이참에 잘됐다 싶었다. 구경 한번 해보자.

숭례문

숭례문 역사에 대해

조선시대

숭례문은 한양 도성 4대문의 하나로 도성 출입에 쓰인 성문인 동시에 사신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나라의 관문 구실을 하였다. 또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군사를 출병시킬 때 관료들이 숭례문 밖에서 전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조(1724~1776)가 숭례문 문루에서 죄인을 다스렸다거나, 정조(1776~1800)가 수원 현륭원에 행차할 때 숭례문 안팎에 척후와 복병을 배치하였다거나, 순조(1800~1833)가 능에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신주를 숭례문 밖에서 맞이했다거나 하는 기록 등을 통해 숭례문의 쓰임새가 매우 다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문과 주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도성 내부의 왕궁과 백성을 파수한 것은 물론 통금 시간(2경에서 5경 사이)에는 성문을 닫아 출입을 통제하였다. 성문을 여닫는 신호는 종이나 북을 쳐서 알렸는데 2경에 성문을 닫는 제도를 인정, 5경에 성문을 여는 제도를 파루라 하였다. 숭례문에 종을 달았다는 기록은 1425년(세종 7년) 4월에 처음 보이고, 이후 종을 쳐서 인정과 파루를 알렸다는 기록이 1536년(중종 31), 1594년(선조 27), 1598년(선조 31) 세 차례 보인다.


일상적으로 성문을 여닫는 일 이외에 가뭄이 심해 기우제를 지내야 할 경우에는 불의 방위인 남쪽의 숭례문은 닫고 물의 방위인 북쪽의 숙정문은 열어 시장을 옮기고 북을 치지 못하게 하는 등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기를 기원하였다. 비가 내리면 다시 숭례문을 열고 옮긴 시장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다시 북을 치도록 하는 등 원래 상태로 되돌렸는데, 1528년(중종 23년) 가을 가뭄에는 봄 여름과 달리 기우제만을 지냈다.

건축

숭례문은 화강암을 높이 쌓아 만든 홍예문(무지개 모양 문)을 출입구로 삼아 도성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하였으며, 그 위쪽에 2층 목조 건물(문루)을 세웠다. 2층 문루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동서 양쪽에 돌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문루 둘레에 전통 벽돌 담장을 두르고 돌계단과 만나는 곳에 작은 문을 내어 문루 출입구로 삼았다. 문루 하층 내부 바닥 가운데 1칸은 마루를 깔고 나머지는 모두 흙바닥으로 만들었다. 지붕은 층마다 모두 겹처마로 만들어졌으며, 추녀마루에는 잡상, 용마루 양쪽 끝에는 취두라 불리는 장식용 기와를 각각 세워 지붕에 위엄을 더하였다.


숭례문

근대

1899년 홍예 아래로 전차가 통과하게 되면서 도성 안팎의 출입을 통제하던 고유의 기능을 비롯하여 군사적, 의례적, 사상적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도성의 4대문은 도로의 확정에 따른 성곽의 철거, 도시의 확장에 따른 도성의 해체과정 등을 겪으면서 축대와 문루로만 이루어진 성문으로 남게 되었다.
일본에 의한 강제 병합 이후인 1910년에는 숭례문 주변에 원형 석축이 만들어지고 그 주위로 전찻길과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이곳은 물산공진회나 박람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1930년대 후반부터는 홍예 내부로의 출입과 접근마저 금지되어 숭례문은 주변 도로로 둘러싸인 섬처럼 고립되게 되었다.

현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숭례문 석축과 문루가 총탄과 포탄에 의해 훼손되어 1953년 긴급하게 수리하였다. 1961~1963년에 다시 석축 일부와 문루 전체를 수리함으로써 전쟁으로 훼손된 부분이 거의 복구되었다. 서울시가 이곳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한 뒤 2006년 3월에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창건 후 600여 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건재했던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에 발생한 방화로 목조건물인 문루 일부분이 불에 탔다. 잔해를 조사한 결과 문루의 2층 90%와 1층 10%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기존에 작성된 정밀 실측 도면과 사진을 활용하면 문루를 복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그 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정밀 실측조사와 구조 안전성 검토를 마쳤으며, 2010년 2월 복구공사에 착공하여 2013년 5월 4일 공사를 완료한 다음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Nicon Keymission 170 으로 찍은 도성문 천장

복구 이후

화재 복구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을 복구공사에 반영하여 그동안의 수리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았다. 1층 지붕 추녀마루의 잡상을 8개에서 7개로 바로 잡고, 용마루 길이를 15.7m에서 16.6m로 고쳤는가 하면, 동쪽 계단 폭을 2.9m에서 5m로 늘리고 문루 1층 중앙 칸에 설치된 마루를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고쳤다. 또한, 1907년~1909년 사이에 헐려나간 성문 좌우 성곽을 동쪽 53m, 서쪽 16m까지 복원하였다.

숭례문Nicon Keymission 170 으로 찍은 숭례문


감상

액션캠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들려 본 숭례문. 국보 1호답게 위풍당당했다. 문루에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아쉽지만 오를 수는 없었다. 문화재 보호 차원이겠거니 이해한다.

다만 조선시대부터 약 600년 동안 한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문화재인데 문화적 가치를 잘 활용 못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유럽의 경우 오래된 성당을 개방하여 관광수입을 톡톡히 보던데 이 성문은 도로 한복판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뮌헨에도 이런 도성문과 같은 건축물이 있는데 그 성문 뒤로 보행자의 거리를 조성하였고, 거리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가게들이 들어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았다. 중세시대의 건축물과 현대식 건축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거의 도심 한복판에 둥그런 대로 교차로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고, 성문 아래서 뭔가를 하기도 어려운 느낌이다.

이 성문 뒤로 남대문시장이 그대로 조성되어 있다면 어떨까. 남대문시장에 가면 다양한 상점들과 사람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 성문을 지나 걸어서 들어왔을 때 그런 분위기의 시장이 나타난다면 시장의 상징성과 재미를 더 배가시켜 관광객들을 훨씬 더 많이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미 조성된 도로가 있어 시공사 등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앞으로 더 나은 서울을 만들려면 도로는 줄이고 보행자로는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숭례문의 홍예를 지나 펼쳐지는 왁자지껄한 남대문 시장을 상상해본다.


숭례문남대문시장 측에서 바라본 숭례문


관람 정보

관람시간

2~5월 / 9~10월    오전 9시~오후 6시
6~8월                 오전 9시~오후 6시 30분
11~1월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휴관일

매주 월요일

입장요금

무료

가까운 지하철

1호선 서울역 4번 출구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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